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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역사유적구라산성(구녀성)

구라산성(구녀성) 썸네일 이미지
구라산성(구녀성) - 주소,대표전화,운영시간,홈페이지주소 순으로 정보를 제공합니다.
주소 충북 청주시 청원구 미원면 ~청원구 내수읍 사이
대표전화 043-201-2021 ~ 5 (청주시 문화재팀) 043-201-2021
운영시간 0:00 ~ 0:00

소개

유명한 초정과 미원의 경계에 있는 구라산성에는 애틋한 오누이의 전설이 전하고 있다. 아홉 자매와 외아들이 사이가 좋지 않아 다툼을 벌이다 목숨을 건 내기에서 홀어미의 도움으로 아들이 이기고 딸들은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이다. 지금도 주민들은 무너진 성벽은 아홉딸이 쌓다가 그만 둔 모습이고, 성안에 남아있는 아홉딸과 부모의 무덤이 설화의 내력을 전해 주는 증거라 믿고 있다.



우애가 좋지 않아 남매 사이에 끊이지 않는 다툼에서 삼국, 후삼국 시대의 치열했던 전쟁이 떠오르고, 끝내 딸보다는 아들을 택한 홀어미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남아선호사상을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아마도 목숨을 건 내기에서 아들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신라나 고려에 의해 통일되었던 역사의 자취일 수도 있다. 그리고 ‘홀어미의 도움[天佦神助 ]’ 으로 국가를 통일한 신라와 고려의 당위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청원 구라 산성은 보은, 옥천, 영동으로 진출한 신라가 북상의 거점으로 삼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보은의 삼년산성을 출발하여 청원 미원의 낭성산성을 거쳐 증평, 진천으로 진출하는 요충이다. 미원과 초정 사이 고개인 이티재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성에서 미호천 일대의 평야는 물론 사방을 조망할 수 있어 전략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아홉딸과 아들이 목숨을 건 내기로 비유되는 경쟁은 당시 국가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벌였던 나라들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산성이 처음 쌓여진 시기는 신라가 보은을 거쳐 북쪽으로 진출하던 때( 6 세기)로, 당시 신라는 구라산성에서 북쪽의 미호천 평야를 내려다보며 고구려, 백제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을 물리친 신라는 청주, 진천 일대를 장악하면서 한강 하류로 진출하였다.



구라산성의다른 이름으로 궁예성(弓裔城), 구려성(句麗城), 고려성(高麗城) 등이 있다. 이것은 지금도 궁예와 관련된 전설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후삼국시대 이곳을 중심으로 견훤과 다툼을 벌였던 흔적으로 보인다.



구라산성은 상정상부를 포함하여 능선을 따라 성벽이 쌓아졌는데 우물이 있는 계곡 상단부를 아우르고 있다. 둘레 872m 로, 산의 정상과 능선에 안팎으로 성벽을 쌓아 올렸으며 3곳 성문이 남아있다. 지금도 성내에는 우물이 있어 이곳을 찾는 등산객의 갈증을 달래 준다.



지금도 구라산성안에는 산신에 치성을 드리는 민간신앙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산성안쪽에 있다가 70년대 말에 산아래로 내려간 구려사(句麗寺)도 호국안민(護國安民)의 기도처임을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 민간신앙은 아홉딸과 아들의 애절한 사영과 함께 구라산성의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주변정보

주소
충북 청주시 청원구 미원면 ~청원구 내수읍 사이